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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제천 장락리 칠층모전석탑"의 두 판 사이의 차이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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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연석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으로 기단부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, 탑신부는 7층으로 회색의 점판암을 쌓아 올렸다. 지붕돌의 네 귀퉁이에는 구멍을 뚫어 풍경을 달 수 있게 하였으며 탑의 머리부분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진 장식받침이 남아있다. 기단부에 남북측으로 감실을 설치하여 문을 달아놓았으나 남측의 것은 유실되어 새로 갈아넣었다. 절터는 논밭으로 변하여 절의 이름이나 규모, 존재 시기 등은 알 수 없다. 탑을 쌓은 방법이나 돌을 다듬은 방법 등을 통해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. 현재 탑 옆에 세워진 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.
 
자연석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으로 기단부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, 탑신부는 7층으로 회색의 점판암을 쌓아 올렸다. 지붕돌의 네 귀퉁이에는 구멍을 뚫어 풍경을 달 수 있게 하였으며 탑의 머리부분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진 장식받침이 남아있다. 기단부에 남북측으로 감실을 설치하여 문을 달아놓았으나 남측의 것은 유실되어 새로 갈아넣었다. 절터는 논밭으로 변하여 절의 이름이나 규모, 존재 시기 등은 알 수 없다. 탑을 쌓은 방법이나 돌을 다듬은 방법 등을 통해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. 현재 탑 옆에 세워진 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.
 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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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8년 8월 2일 (토) 00:39 판

제천 장락리 칠층모전석탑
堤川長樂理七層謀塼石塔
대한민국의 보물

220px

지정 번호 보물 459호
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65-2번지
제작 시기 신라 후기
1967년 6월 23일 지정
{{{비고}}}

제천 장락리 칠층모전석탑(堤川 長樂理 七層謀塼石塔)은 통일 신라 시대의 모전석탑이다. 국유재산으로 충청북도 제천시 장락동 65-2번지에 있다.

자연석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으로 기단부에는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, 탑신부는 7층으로 회색의 점판암을 쌓아 올렸다. 지붕돌의 네 귀퉁이에는 구멍을 뚫어 풍경을 달 수 있게 하였으며 탑의 머리부분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진 장식받침이 남아있다. 기단부에 남북측으로 감실을 설치하여 문을 달아놓았으나 남측의 것은 유실되어 새로 갈아넣었다. 절터는 논밭으로 변하여 절의 이름이나 규모, 존재 시기 등은 알 수 없다. 탑을 쌓은 방법이나 돌을 다듬은 방법 등을 통해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. 현재 탑 옆에 세워진 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.